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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투란도트) - 전진석, 한승희님


처음 투란도트 이야기를 읽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그때의 투란도트는 단순히 자신의 미모에만 혹해 달려드는 남자들을 잔인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여자, 라는

느낌이었지만, 새삼 투란도트를 다시 접하자 기분이 미묘하다.

다시 만난 투란도트는 전진석,한승희님의 '천일야화'의 첫번째 이야기의 투란도트였다.

다시 만난 가장 유명한 투란도트의 세가지 수수께끼, 그 부분에서 뭔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할까.

 

 

이것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갯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이다. 끝없이 어두운 인간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모두가 바라는 환상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나기 위해 밤마다 태어나서 아침이 되면 죽는다.

다시 되살아나는 환상, 그것은 희열 속에서 나를 유혹한다.
투란도트여, 그것은 희망(La Sprenza)이다.

 

이것은 불과 같이 타오르나, 불은 아니다. 불꽃과 달았으나, 불꽃은 아니다. 정복을 꿈꾸고 싶다면 이것을 불태워라. 그러나 너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죽는다. 너의 이것은 곧 차가워진다.

그대가 만일 나의 심장을 볼 수 있다면, 거기서 불처럼 타오르는 내 심장을 볼 것이오.
공주여! 나의 피는 차가워지지 않소! 답은 피(Il Sangue)이다.

 

이것은 그대에게 불을 주며, 그 불을 얼게하는 얼음이다.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이것은 그대를 노예로 만들고, 이것이 그대를 노예로 인정하면 그대는 왕이 된다. 이제 너의 희망은 사라지고, 너의 피는 차가워질 것이다! 너에게 불을 주는 차가움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아주 좋아한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간절한 손길. 아름다운 공주의 살짝이나마 흐트러진 시선이 자아내는 구도가 매우 확 들어온다고 할까나. 하지만 칼라프의 사랑한다는 감정은 그녀를 보면서 일시적으로 생긴 감정이니까, 그닥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그녀를 확실히 사랑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저 아름다운 여자에게 잠시나마 혼을 뺏긴 평범한 남자와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옛 작곡가들은 몹시도 로맨틱한지 이런류의 러브 스토리가 많다. 한눈에 빠져버린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짧다. 하지만 조금씩 빠져들어 헤어나올수 없을정도로 젖어버린 사랑을 하는 이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모를만큼 깊고 진하게 빠져들어버린다. 마치 소량의 독약을 매일 마시듯.

 

한없이 닫혀있던 마음의 투란도트는 이 세가지 수수께끼를 맞춘 이방인에게 조금의 마음도 허락하지 않는다.

역으로 칼라프는 투란도트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아오면 목을 내어놓겠다는 맹세를 하고,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위해 혈안이 된다. 투란도트의 명령으로 끌려오게 된 시녀 '류'는 가슴안에만 칼라프의 이름을 담아둔채 모진 고문을 견디며 그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

 

<사랑을 거부하고 있는 투란도트. 칼라프를 오랫동안 사랑해 온 류. 투란도트를 사랑한 칼라프>

 

류는 끝내 이름 대는 것을 거부하고 칼라프를 살리기 위해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죽는 순간 마지막으로 칼라프의 이름을 부른다. 투란도트는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칼라프에게 입을 맞추며 이 청년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둘은 결혼하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원작의 내용이다.

 

사실 투란도트는 원작자인 푸치니가 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어 제자가 완성했다고 한다. 이 해피 엔딩(?)으로. 하지만 나는 해피 엔딩이라고 감히 칭할 수가 없다. 처음 만난 투란도트속에서는 '류'를 크게 보았다. 사랑에 희생당한(이건 솔직히 희생했다기 보다는, 그녀에게 강요된 굴레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주종관계란 이름으로 점철된.)류가 죽었는데 좋다고 둘이 결혼한다는 것도 웃기고, 투란도트가 칼라프를 사랑하게 되었을 것을 깨닫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닫혀있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는게 먼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난 투란도트는 류보다는 투란도트 쪽에 마음이 더 와닿았다. 가족을 죽이고, 사랑하는 언니를 능욕하고 죽인 서양인의 남자.(비록 그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필이면 그가 수수께끼를 맞춘 바람에 원하지 않던 결혼을 해야하고.(여기서 마음을 바꾼건 어쩌면 인간적인 면모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보다도 어릴적에 입은 상처로 망가지고 썩어들어간 영혼을 간직한채 비정하게도 사랑하라, 결혼해라 라고 말하고 있는 세상의 시선에 맞서야 하는 고충까지. 다친 마음을 치유해주고, 감싸안아줄 사람이 좀 더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불같이 화내며 류에게 채찍을 내리치는 장면은 차라리 자신을 때리는 것과 같았다. 감정동요, 흔들리는 자신을 더 다잡기 위해, 독해지기 위해, 차가워지기 위해 휘두르는 고통스러운 채찍.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품은채 그 고통을 견뎌내던 류보다 싸늘하게 식은 심장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투란도트가 더 아팠을 것이다.

그런 투란도트의 미묘한 심리선을 짚어나간 것이 이번의 수확이다.

 

 

여담인데, 투란도트 이미지가 나루시게 닮았다 < 그러면 그렇지 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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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1 13:09 2008/05/1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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